수사학 - 키케로
[키케로 사진]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llius Cicero, 기원전106년~43년)는 로마 공화정 말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정치가로서 성공을 하고,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철학자로서 그는 신아카데미학파에 속하지만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소요학파 등 당시 유행하던 헮레니즘 철학 전 부문에 정동한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수사학 전통을 이어받아 집대성한 수사학의대가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민회와 원로원에서는 정치와 정책에 관한 연설을 하고, 법정에서는 고발과 변호의 연설을 통해 명연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수사학'은 로마 공화정 후기 시대는 물론 헬레니즘 시대의 세계를 비추어주는 거울인 것이다.
- 키케로의 생애와 사상
키케로는 기원전 106년 1월 3일 아르피늄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죽 표백 사업가였고, 어머니 헬비아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장사꾼이라고 전해지는 곳도 있는데 이는 그를 비하하는 반대파에 의해 와전된 것이다. 그의 가족, 집안과 수사학과 법학을 공부했다는 점, 그리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그의 친구였다는 점을 보면 그는 상류층에 속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어렸을 때 '이집트 콩'이라 놀림받았던 키케로는 어려서부터 배우기 좋아하고 지혜를 사랑했으며, 시작(詩作)에 큰 재능을 보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수사학을 배우고(비록 중간에 학교가 폐교 되었지만)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았으며 디오도투스와 27년을 함께 살면서 그에게서 철학적인 영향(철학의 진수)을 많이 받았다.
키케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키케로 인생의 도반이자 '또 하나의 나'였던 아티쿠스가 독실한 에피쿠로스 철학의 문도였으나 그들의 우정 관계는 언제나 돈독했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된다. 이러한 키케로의 철학적 관용정신은 어느학파에게나 공정성을 유지하였다. 키케로의 집은 언제나 철학자들의 방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의 집은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페리파토스학파 그리고 아카데미아학파의 모든 철학자들에게 열려 있었다. 당시 로마로 몰려든 모든 종류의 철학학파와 교류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합리적 척도를 찾으려고 노력했다.